2024년은 내가 정서에 관심을 갖고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한지 25년쯤이 되는 해이다. 정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인간의 고통에 대해 끈질기게 들여다보면서, 그 고통에서 벗어나는 열쇠가 바로 정서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부터였다.
난 어렸을 때부터 사는 게 힘들었고 고통스러웠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즈음부터 삶과 죽음에 대해 의문을 가졌고, 10살이 되던 해부터 죽음에 대해 줄기차게 생각하였다. 결국 삶을 살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하면서, 살면서 겪는 고통을 어떻게 하면 덜 수 있을지에 대해 궁리하기 시작하였다. 지금도 인간이 겪는 심리적 고통을 더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고, 그러한 고민은 죽는 순간까지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대학에 들어와서 심리학을 만나게 되었고, 그 안에서 정서가 바로 고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힘들다는 것 즉 고통은 정서이고, 그 정서적 고통을 완화하거나 벗어나는 방법이 정서를 다루는 정서조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석사 과정에서 정서심리학을 들으며 정서에 대한 관심을 발전시켰고, 박사과정에서 정서지능과 정서조절방법에 대한 연구로 이어졌다. 그리고 박사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정서조절코칭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심리치료 기법으로서의 체험적 정서조절방법을 구분 및 체계화하고 그 치료적 효과를 검증하였다.
서울디지털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던 2012년에 모 대학원에서 ‘체험적 심리치료’라는 과목을 개설하려 하는데 적합한 강사를 찾는다며 제의를 받았다. 강의를 하면서 국내에 체험적 심리치료 이론서가 필요하고, 직접 집필할 마음을 갖게 되었다. 지금도 체험적 심리치료에 대한 책들이 많지 않지만, 당시만 해도 번역서가 거의 없어서 원서를 통해 공부해야만 했다. 기존의 심리치료 이론들이 강조하지 않았던, 그러나 상담 및 심리치료의 핵심적 요소인 정서와 체험을 강조한 체험적 심리치료에 대해 소개하는 책이 별로 없었다.
이후 체험적 심리치료에 대한 원서나 번역서가 꾸준히 소개되고 있어 반갑기는 하지만, 대부분 체험적 심리치료 이론을 이해하고 임상 장면에 실제로 적용하기에는 다소 모호하고 추상적인 면이 있었다. 정서나 체험 그리고 프로세스의 모호함과 복잡함, 그것에 접근하는 체험적 심리치료 이론의 모호함, 그 이론을 담고 있는 이론서의 난해함 등으로 인해 체험적 심리치료가 널리 확산되기에 어려운 아쉬움이 크게 느껴졌다. 그래서 보다 쉽게 체험적 심리치료를 이해하고 전달할 수 있는 이론서를 써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정서와 체험적 과정을 강조하는 체험적 접근을 보다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고자 꾸준히 노력해 왔다. 2015년에 내가 근무하는 서울디지털대학교 상담심리학과에 ‘체험적 심리치료’ 과목을 개설하면서 책을 구성하는 내용의 틀을 마련하였다.
그렇게 시작된 체험적 심리치료 이론서는 준비한 지 10년 만에 드디어 정서적 변화 과정에 중점을 두는 심리치료인 ‘정서중심적 치료(Emotion-Centered Therapy): 변화를 위한 체험적 심리치료’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내놓을 수 있게 되었다. 그야말로 그토록 이루고 싶었던 오랫동안의 숙원이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정서의 변화 과정을 중심에 두는 심리치료 이론을 완성할 수 있었다. 정서를 다루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면서, 정서의 속성과 그 정서의 변화 과정을 보다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상담 및 심리치료란 결국 우울, 불안, 분노, 수치심 등의 정서적 고통으로 힘들어하는 내담자들의 정서를 변화시키는 접근이다. 그렇다면 내담자가 변화한다는 것은 내담자가 겪는 정서가 변화한다는 것이고, 그 정서적 변화가 심리치료의 핵심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러나 기존의 심리치료 이론 대부분이 정서적 경험의 이해를 치료적 핵심 원리로 두고 있을 뿐, 정작 정서적 변화 과정에 관심을 두고 접근하는 심리치료 이론은 없었다. 그래서 정서의 속성을 이해하고 정서를 변화시키는 프로세스를 중심에 두는 심리치료 이론을 개발할 필요가 있었다.
2011년에 ‘정서조절코칭북: 내 감정의 주인이 되어라’을 출간한 이후 전국의 다양한 국가기관, 공공기관, 대학, 심리상담센터, 기업 등에서 의뢰받은 강의와 워크숍 등을 실시하면서 나의 생각은 정교화 되어갔다. 그리고 정서중심적 심리치료 즉 Emotion-Centered Therapy라는 치료 이론을 완성하여 강의하게 되었고, 이 또한 강의를 통해 치료 이론을 계속 발전시켜 나갈 수 있었다. 2007년부터 꾸준히 실시해왔던 정서조절코칭 프로그램(집단상담)과 개인상담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정서적 변화를 도왔다. 이러한 경험은 나의 심리치료 이론을 확립하고 정교화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10년 넘게 준비한 심리치료 이론서를 완성하는 것은 생각보다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새로운 심리치료 이론을 세상에 내어 놓는다는 것 자체가 매우 조심스러웠고 두려웠다. 하지만 어느 순간 더 이상 주저하고 망설여서는 안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현장에서 정서중심적 치료 이론의 내용에 공감하여 여러 임상 장면에서 활용하고 있는 전문가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근거로 제시할 문서화된 자료가 있었으면 한다는 건의를 계속 해왔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집필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고, 드디어 2024년 봄에 집필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정서중심적 치료(Emotion-Centered Therapy): 변화를 위한 체험적 심리치료]의 머리말 중에서
